당사자, 회복수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자아에 대한 성찰, 대인관계와 진로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고민들은 누구나 사춘기에 겪을 법한 보통의 일 같지만, 저에게는 어찌 해결할 방도가 없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우울한 채로 지내며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 저절로 우울함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습니다. 20대가 되어서부터는 우울함에 불안증세까지 더해졌습니다. 다니던 대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중퇴하였고,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무기력해지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은둔 생활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잠이 들면 이유 없이 숨이 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활동이라고는 책을 읽기 위해 겨우 겨우 도서관에 다니는 정도였습니다. 몇 군데 정신과 의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의사들의 냉담한 태도에 신뢰를 잃고 병원 다니기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했듯이 저 또한 정신병원에 대해 무지했던 것도 있어 저 자신의 상태가 나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방치하며 별다른 치료 없이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서른 일곱 살 무렵, 생활고와 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병이 더 커졌습니다.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환시와 누군가가 나를 만지는 듯한 환촉을 겪었고, 사람들이 나를 해칠 것 같은 두려움, 반대로 내가 사람들을 해칠 것 같은 두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 있어 나를 밀어내고 내 몸을 차지하려든다는 망상, 내 자신이 죽었다는 망상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저를 혼란스럽고 두렵게 하는 그 일들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병원생활은 제게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병증을 보는 것이 힘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 오히려 병이 덧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루 빨리 회복하여 퇴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규칙적인 생활을 잘 따랐고, 약물치료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빠뜨리지 않고 약물을 복용하여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아 병증이 재발하거나 재입원하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퇴원 후에는 잠시 동안 본의 아니게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퇴원했다고 해서 곧바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취업도, 대인관계도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할 일 없이 무료한 날들을 보내던 중 양산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소개로 정신재활시설인 벧엘클럽하우스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벧엘클럽하우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보호작업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은 저에게 재기의 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벧엘클럽하우스에 다닌 지 1년 쯤 되었을 때, 시설을 통해 ○○병원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실을 돌아다니며 청소하고 집기를 세척하는 일은 고되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분들 덕분에 정신적으로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그 분들은 차별과 편견없이 편하게 대해주셨고, 저는 그 분들 덕분에 회복과 재기를 위해 극복해야할 어려움을 덜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저는 제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생활을 지내고 있습니다. 재활시설 덕분에 병을 가지고도 취업할 수 있었고,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휴식을 즐기며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성실히 일하고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는 것으로 이 생활을 잘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당사자 여러분!
저는 한때의 무지로 치료를 제때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증은 깊어지고,
인생에 있어 소중한 젊은 날의 시간들을 무력하고 불안하게 보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하는 시대입니다.
부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병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 잘 회복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