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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정하 대표를 만나다.

파도손은 2018년 6월 정신장애와 인권이라는 사단법인의 허가를 받아 운영되어오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이다.
마음 the 봄 6호에서는 파도손의 설립자인 이정하 대표를 만나보았다.

파도손 이 정 하 대표

파도손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자조모임으로 시작이 되어, 현재는 한국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법인으로 운영되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도손이 꾸려진 배경이 궁금하다.

파도손은 투병, 입원, 취업 등 어려움을 가진 당사자들이 소통하는 온라인카페에서 시작되었다. 오프라인으로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200명의 당사자가 모이게 되었다. 그 중 15명이 당사자 조직을 만들자는 시도 끝에 2013년 파도손이 꾸려지게 되었다.
파도손의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법인화 시도를 했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파도손이 사라지게 된 적도 있었다. 2016년 정신건강 복지법 전면개정안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당사자들이 다시 모였고, “정신장애인 인권, 파도손”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고 긴 투쟁 끝에 사단 법인 [정신장애인과 인권, 파도손]이 탄생하게 되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속, 당사자 활동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당사자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정신의료기관의 치료환경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였다. 내가 가장 아플 때 치료해주는 곳이 오히려 고통을 주는 환경을 변화시켜야한다고 생각했다. 증상을 완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로 잘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픔을 겪었던 당사자들이 모여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생각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정하 대표님에게 파도손은 어떤 의미이며,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는가?

파도손 활동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정신장애인의 증상과 아픔으로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가 모두 얼마나 위대한지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저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역량이 높아지는 것도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5년 이상 장기입원치료로 병원에 트라우마를 가진 당사자가 있었다. 증상악화로 병원치료가 필요한 동료였지만 치료에 대한 공포심으로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친구였다. 동료들이 미리 대학병원에 입원치료가 가능하게끔 개방병동을 확보해두고 그 친구 곁에서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도 점차 극복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료지원가활동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당사자가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외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토론회 개최 및 입법공청회 참여 등 여러 당사자 권익옹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활동을 통해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된 사례가 있는지, 어떠한 성과를 얻어냈는지 궁금하다.

당사자활동 중 절차보조사업1)이 제도화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 하겠다.
그리고 동료지원가가 정부에서 직업군으로 인정받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당사자 중심의 정책이 입법화 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렇게 조금 느릴지라도 당사자활동의 움직임이 점차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1) 정신질환자가 입원치료과정에서 치료의 필요성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각종 절차를 보조하여 치료과정에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

당사자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

첫 번째로 좋은 법을 만드는 것보다 나쁜 법을 막는 것이 더욱 힘들다.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입원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기준이 없으며, 보호입원 대상자의 의사 의견이나 부당한 강제입원에 대한 불복제도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아 당사자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등의 많은 문제로 당사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에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반영되지 못했고 동료 당사자와 가족들의 원망을 듣는 것이 힘들었다.
두 번째는 조현병에 대한 사건범죄가 언론에 보도 되었을 때이다. 대중들은 미디어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러한 보도는 지금까지 애써왔던 정신장애 인식개선활동을 한꺼번에 퇴보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큰 무력감을 느꼈었고 동시에 이런 보도들로 인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외려 위축되고 주변의 혐오적인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점이 안타까웠다.

파도손의 당사자 다섯 분이 모여 치료 당시 겪었던 어려움, 삶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나는 정신장애인이다”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책을 쓰게 된 목적은 무엇인지 이 책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각자가 경험했던 역사가 담긴 책이 “나는 정신장애인이다”이다. 발병, 병원에서의 생활, 경험들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어져있다.
각 개인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정신질환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이는 정신장애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정신장애인을 이해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완성된 책은 각 정신의료기관 등에 배포했었고, 한 병원의 의사는 책을 읽고 자신이 대신 사과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또한 우리는 그저 약만 소비하는 정신과 환자가 아니라 재능이 있는 인재들이고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 책은 다큐 시선, 지식채널e 등에서 소개되었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컨텐츠로 활용된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

  • [나는 정신장애인이다 - 파도손]
  • [EBS 다큐시선 - 우리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인식도 점차 달라져 많은 이들이 정신건강문제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은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는 인식이 높다. 이러한 편견은 오히려 정신장애인을 고립시키고, 치료를 막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 속 경험당사자로서 편견을 가진 비경험자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사자를 아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인식 자체가 정신장애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주민들이 기피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마을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이고, 주민이며,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이다. 결국 당사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에서 나와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고,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음에도, “나는 할 수 없을거야”, “나는 도움이 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로 나오길 꺼려하는 당사자에게 용기를 복돋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손을 내밀면 다가와 잡아줄 수 있는 동료가 있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자원도 반드시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투병경험도 곧 재산이고, 우리는 경험당사자이다.” 내가 가진 재산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가치를 지닌 사회적 존재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