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드 코로나 시대, 자살예방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몇 년전 겨울 몹시 추운날 20대 여성이 119를 통해 응급실로 왔다.
현실의 고통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한강에 몸을 던졌지만 다행히 시민의 신고로 구조되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옷은 젖어 있었고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조현병이 심했다. 발병한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유일한 직계가족인 아버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고 한다. 조현병은 치료받지 않은 기간이 길수록 초기치료가 길어진다. 입원은 2달이 넘게 이어졌다. 급성증상은 좋아졌지만 음성증상이라고 불리는 감정이 없고 사람을 회피하는 모습은 별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입원을 통해 딸의 변화를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알게 되었다. 퇴원 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것은 물론 정신건강복지센터에도 등록하여 사례관리도 받고 정신재활시설도 다니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환하게 웃으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취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진료일마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다. 일만큼 한사람의 자존감을 높일수 있는 것이 있을까? 조금씩 다양한 색깔이 더해지는 이분의 삶을 나누는 건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왔다. 아버지가 하던 일은 중단되었다. 다니던 회사가 힘들어지면서 주변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는 상황은 커다란 불안으로 다가온다. 몇해전 겨울 이후 지금이 최악의 위기상황이다.

한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실제 필자가 속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금 대한민국의 정신건강의 현주소는 심각하다.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실태조사결과 국민 5명중 1명이 우울 고위험군이며 12%는 자살을 생각한다고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OECD 통계가 작성된 이래 한해를 제외하곤 자살률이 1위였던 우리나라에서 경찰청 조사에 의한 자살원인은 1위가 정신과적 문제, 2위가 경제적 문제, 3위가 건강문제이다. 코로나는 이 세가지 문제를 모두 높인다. 코로나 우울로 이야기되는 정신건강의 문제와 함께 접근이 제한되면서, 지역사회에 방치되는 중증정신질환 환자도 늘고 있다. 실업, 자영업자 등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 자체가 건강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며 확진자들은 코로나를 이겨낸 후에도 질환 자체의 후유증으로 또 편견과 혐오로 인해 긴 우울증의 터널에 갇히기도 한다.

모두가 다 힘들었던 시기에는 함께 이겨내자는 희망이 작동하기도 한다. 이를 재난 후 ‘허니문 시기’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작년 여름까지는 경찰 잠정통계로 볼 때 자살이 감소하였다. 그런데 일본은 9월에 시작하여 10월에는 전년대비 45% 자살이 증가했다. 특히 여성과 청년이 증가하였는데 비정규직 노동자, 양육부담이 큰 여성의 피해가 컸다고한다. 그래서 지난 2월 일본은 고독-고립문제 대책실을 신설하고 장관급을 임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올해 3월과 4월 처음으로 소폭이지만 코로나 전보다 자살이 증가했다. 자살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지만, 자살의 증가는 고통에서 희망을 찾지못하고 절망에 빠진 국민이 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고신호이다.
코로나 시기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경고신호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형 표준 생명지킴이 프로그램 보고듣고말하기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자살위기에 빠진 사람이 보내는 경고신호를 ‘보고’ 아픈 마음을 공감하며 ‘듣고’ 끝으로 안전점검목록을 확인하여 필요하면 전문서비스에 연결하는 ‘말하기’를 통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제 자살사망자의 가족에 대한 인터뷰 즉 심리부검결과는 자살사망자의 93%가 자살의 경고신호를 보내지만, 대부분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안타까운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자살유가족의 책임이 아니다. 130만명의 국민이 [보고 듣고 말하기] 교육을 수료했지만 이 시기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금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 교육도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수료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자살예방법 3조에 자살위기에 빠진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본의 자살예방법 1조는 자살을 내몰린 죽음으로 정의한다. 물론 누가 내몬 것은 아니지만, 연속적인 스트레스로 자살위기에 빠진 국민이 늘고있는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에 이들을 구조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 코로나 사망자는 4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사망자는 2천명대이다. 우리나라에서 2019년 기준 연 13,799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코로나보다 더한 절망의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으려면, 삶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빨리 찾아가고 도울 시스템에 투자해야한다. 편견과 차별을 걱정하지 않고 정신건강서비스를 마음놓고 어디서든 이용할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투자해야한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의 리더들이 일관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앞장서서 자살예방교육을 받는 등 행동에 옮겨야한다.

자살사망자에 대한 심리부검결과는 이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복지와 의료서비스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조차 하지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주변에 혹시 말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자. 만일 누군가 힘들어보이는데 어떻게 도와주어야할지 모른다면, 1577-0199로 전화하면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결되어 정신건강전문가에게 어떻게 도울지 그 방법에 대한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자살위기에 빠진 한사람의 곁에 한 사람이 있어 그 연결이 희망으로 이어지면, 자살은 예방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