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칼럼, 나는 자살유가족입니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입니다.
자살은 남아있는 가족, 친구에게 갑작스럽고 혼란을 안겨주게 됩니다.
마음 the 봄 3호는 자살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자 자살유가족 자조모임, 방송출연 등 자살예방을 위해 활동하고 계신 심명빈 선생님의 글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이 자살했다. 나에게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죽을 만큼 힘들지만 아내에겐 말하지 못하는 고통은 무엇이었 을까? 나라는 존재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아니였을까? 그냥 유령 같은 존재였을까? 내가 남편에게.
대한민국 평균 부부의 모습으로 살았다고 아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남편의 죽음 앞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맘껏 표현하지도 못했다. 장례식장에서모든 이들의 눈과 손가락이 나를 향해 공격하고 있었다. ‘남편이 그지경이 되도록 뭐하고 있었대?’ ‘부부싸움을 크게 했다는대’ ‘평소 우울증이있었대’ 나도 알 수 없는 기막힌 일들이 마치 사실인 양 감돌고 있었다.
자살은 이해되지 않는 죽음인 탓에 남겨진 유족들이 감내해야 할 감정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모든 죽음에는 원인이 제공된다.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자연사하거나.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되면 남겨진 유족은 맘 편히 슬퍼할 수 있다. 그 죽음이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맘 편히 할 수 있다. 또한, 그 죽음을 추모하고 추억한다. 이야기되어지는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지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살은 이야기가 다르다.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커다란 상처로 자리 잡는다.
상처는 우리 뇌의 편도체에 기억된다.
그로 인해 상처를 떠올리면 말을 하기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 머릿속이 하예진다.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손 발이 저린다. 속이 메스꺼워진다. 등등. . 생각만으로도 몸의 이상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피했다. 자살과 관련된 모든 것 들로부터.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걱정해주는 듯한 분위기가 싫었다.
동네사람들도 마주치기가 싫어서 가급적 외출을 삼갔다.
어떠하냐고 안부 전화를 하는 지인들 전화도 피했다.
영혼이 없는 껍데기로만 살았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도 몰라 죽지도 못했다.
하루이틀 그렇게 살았다. 끝이 보이지않는 어두운 동굴속에서 그렇게.
눈 앞의 현실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장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삶은 절망적이었지만 힘을 내야만 했었다. 운동을 했다. 하루하루를 기억하기위해 일기를 썼다. 그 날의 감정들을 글로 표현했다. 숨이 조금씩 쉬어 지는 것 같았다. 아직 남편이 용서되지 않아 맘 속엔 분노가 가득했지만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는 마음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밀려와 펑펑 울었다.
그 날이후로 한번씩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시도때도 없이 밀려왔었다.
연분홍 벚꽃이파리가 눈처럼 흩날리는 날에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대성통곡을 했었다. 슬픔의 주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늠조차도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연민인지, 그에 대한 그리움인지
그렇게 고통 속에 살다가 어느날, 심리부검 참여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보았다. ‘죽은 사람 심리를 어떻게 부검할건데?, 내가 모르는 감정들을 이분들은 알 수 있나?’ 궁금증을 가지면서 신청하게 되었다.
남편의 죽음이후, 남편에 대해 말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남편에 대한 화가 있으니 상담을 받아도 개운하지 않았지만 심리부검을 하고 나니 원망의 부피가 줄어들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는데 말을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2020년 12월 1일은 남편이 죽은 지 6년이 되는 날이다. 자살 유족으로 살아온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남편의 자살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없었다. 그렇다고 분노하거나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남편의 자살, 그 사건에 대한 몸의 격정적인 반응도 없어졌다. 남편을 추억하게 되었다.
지난 세월동안 나는 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력하는 가운데 같은 슬픔을 가진 자살 유가족이 모인 자조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혼자가 아닌 사실 만으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함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한다.
- 자살 유가족 심명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