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공존을 위한 허들링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박미옥 회장

박미옥(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장)

지난 10월 6일 KBS가 투자·제작한 영화 <F20> 이 개봉되었다. 제작진은 개봉 전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 배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현병에 관한 주변의 편견을 다루겠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조현병은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김으로 조금이나마 조현병 인식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완전 부서트린 영화였다. 이에 대한 조현병 당사자들은 반발하며 정신장애에 대한 심각한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는 영화와 이를 제작한 KBS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10월 20일 KBS방송국 앞에서 가졌다. 이후 방속국관계자들과의 대담회를 통해 KBS F20 드라마 방영이 중단 결정되었다.
정신장애인은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갈 수 없는가?

정신장애인의 복지권

젠더·인종·계층·성적지향·장애·국적·종교와 상관없이 ‘모든’사람은 인간이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교육권(제31조), 근로권(제32조, 제33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주거권(제35조), 모성보호(제36조 2항), 보건권(제36조 3항) 등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법 제9조~제13조에 걸쳐 규정하며, 법 제3조는 사회보장의 개념을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ㆍ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국민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소득과 서비스보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2008년 12월에 비준했고 2009년 1월부터 발효된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예방-치료-재활-기회의 평등’이라는 전통적 장애인 정책 관점에서 인권의 관점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지역사회 독립생활을 위한 일자리 제공, 일자리 유지를 위한 근로정책, 주거지원, 사회생활이 우선한 장애정책으로 바뀌게 되었다. 질환의 예방도 장애를 수반할 질병의 예방이 아니라 장애인의 건강 악화의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장애’를 사회에 주어진 상황, 인간의 다양한 존재 형태로 전제한 후 사회 제도를 개편할 것을 추구한다. 2021년 1월에 발표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의 정책방향은 지역사회 내 자립지원(지역사회 내 안정적 주거지원, 맞춤형 고용지원,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다양한 복지서비스 개발 및 도입, 사각지대 정신질환자의 자립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지역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강화되었다.

행복의 결정 요인은 개인에 따라, 나라마다, 시대마다 수 만 가지가 작용할 것이다. 런던정경대 교수 리처드 레이어드는 이러한 다양한 요인에도 보편적으로 행복의 7대 요인을 "우리의 가족 관계, 우리의 경제 상황, 우리의 일, 우리의 공동체와 친구들, 우리의 건강, 우리의 개인적 자유, 우리의 개인적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중에 건강과 소득을 제외하면 인간관계의 수준과 질 속에서 행복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공존을 위한 지원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정신장애인에게는 환영받는 장소, 약물을 비롯한 치료, 상담, 사회보장, 사례지원자, 거주 공간, 재정지원, 신체 건강, 법률적 지원, 접근성 보장 등 10가지 정도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원체계들은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연결고리를 잘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정신재활시설에서는 이 고리들이 잘 연결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정신재활시설에서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열망과 삶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이 연결고리들을 활용하며 지원한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이 다양한 관계 맺기를 통해 지지적인 관계를 경험한다. ‘정신장애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고 질적인 삶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경험의 부재의 다양한 요인 중 하나가 정신재활시설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정신장애인복지문제는 이해관계자에 따라 다른 정의로 규정할 것인데 공급 부족, 낮은 접근성이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다수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독립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부족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무력감을 느끼고 권리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정신재활시설이 복지지원의 적합한 전달체계로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지역사회의 혐오와 배제, 지방이양사업 등 진입장벽이 어려운 구조하에 복지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2019년 전국정신건강관련기관현황집에 의하면 시·도별 인구 10만명당 정신재활시설 입소, 이용 정원수 비교에서 경남은 최하위의 통계를 보인다. 즉, 정신장애인의 자립과 회복을 지원하는 정신재활시설의 수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자체이다. 경남에는 18개 시.군중에 현재 양산, 김해, 고성, 진주시에만 4곳의 정신재활시설이 보조금을 지원받으며 운영 중이다.
김현민의 2021년 정신장애인과 주민의 지역사회통합 경험 연구를 살펴보면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마을에 속하는 경험을 통해 지역사회 일원이 되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참여한 주민 또한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새로운 이웃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정신장애인이 무섭고 공격적인 사람이 아닌 우리랑 똑같은 사람으로 알고 나니 그냥 편견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다. 한 달 두 달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느낌으로 마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동료로, 이웃 관계가 되어갔다.

고성에서 정신장애인의 ‘마을살이’ 리빙랩(Living Lab) 프로젝트를 올 해 5월부터 시작하여 얼마전 결과발표회를 하였다. 정신장애인의 슬기로운 독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마을 주민 6명과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민일촌을 맺어 동아리활동, 집들이, 장애인식개선 캠페인 등 함께 시간을 쌓으며 이웃으로 관계를 맺어갔다.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주거독립은 가능함을 리빙랩 실험을 통해 증명하였다. 참여한 주민일촌은 함께 활동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너무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며 자신부터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되었다며 감사해했다. 정신재활시설 주순애원과 고성군종합사회복지관 등 여러 기관이 컨소시엄으로 함께 역할을 수행하며 연대한 아름다운 결과였다.
최근 시민들이 살아가는 동네, 마을, 지역사회의 현장들에서 다양한 삶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들이 끊임없이 피어나도록 새로운 지역주민중심의 생활실험(리빙랩)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을 본다. 정신장애에 대한 낙인감소에 접촉을 통한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여럿이 있다. 또한 위의 사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실험실로 삼아 정신장애인의 복지문제에 다양한 기술과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있다.

서로에 대한 배제가 외로움을 가중하고 정신건강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임을 기억하고 정신장애인이 질환/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 배제와 차별, 혐오가 아닌 ‘인간’으로서, 한 나라의 ‘국민’으로, 지역사회 ‘주민’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당당히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인식하고 지원해 나가길. 이를 위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평등 세계의 확장을 위해 함께하고 책임을 나누 고 서로 지지하는 ‘다름의 연대’를 했으면 한다. 연대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로 힘들어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모임에 함께 나가는 것과 같은 작은 일로 연대를 시작할 수 있다. 존재함이란 언제나 ‘함께-존재함’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경남지역 이곳저곳에서 정신재활시설과 정신장애인 당사자, 지역주민이 함께 행복한 공동체로 허들링 하기를 기대한다.

*허들링(Hudding)
알을 품은 황제펭귄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혹한의 겨울 추위를 견디는 방법으로 무리 전체가 돌면서 바깥쪽과 안쪽에 있는 펭귄들이 계속해서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것. 바깥쪽에 있는 펭권들의 체온이 떨어질 때 서로의 위치를 바꾸므로 한겨울의 추위를 함께 극복.